사직 2구역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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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2구역을 중심으로

광화문역에서 나와 경복궁까지 쭉 뻗어있는 세종대로에서 조금만 옆으로 길을 틀면 경희궁이 나온다. 서울 5대 궁궐이라지만 다른 궁들에 비해 한적한 모습이다. 그 옆에는 각 기업·재단의 사무실과 갤러리, 고급 레스토랑이 즐비한 신문로가 있다. 가끔 고급 자동차가 내가 길가로 비켜서길 기다렸다 언덕을 넘기 위해 액셀 밟는 소리가 들릴 뿐, 저녁 시간이 되기 전이라서 그런지 이곳 역시 조용하다. 그 길 끝에는 지어진지 얼마 안 되는 고층아파트가 있는데 여기서부터 사직동이다.

사직동은 사직로를 기준으로 사직단이 있는 북쪽과 지금 내가 있는 남쪽으로 나눠진다. 북쪽이 속한 지역이 경복궁 서편에 위치했다 하여 서촌으로 불리며 관광지로 각광을 받으면서(그리고 무려 ‘사직동 그가게’라는 이름을 가진 티베트 난민을 돕는 단체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일하면서) 그곳에는 여러 번 가보았지만 이쪽은 처음이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이런 곳이 있었던가 할 정도로 오래된 집들이 가득이다. 사직1구역 풍림스페이스본 아파트를 시작으로, 사직2구역 역시 2009년 재정비사업을 시작하고 2012년 아파트 건설 허가를 받으면서 그와 같은 아파트가 지어질 예정이었지만 최근 서울시가 재개발을 직권해지했다.

옛 한양도성이 지나는 곳이라 보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건설을 중지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에 한양도성을 등재하는 것에 실패한 후 주민들의 반발을 사고 있기도 하다. 올 5월 재개발을 담당하던 조합측에서는 서울시를 상대로 재개발 직권해지 무효 소송을 걸었다고도 한다.

이 동네 터줏대감

그 때문인지 어수선한 분위기이다. 인적이 드문 와중에 경찰차가 느리게 순찰을 지나가니 잘못한 것도 없는데 뜨끔하고 눈치가 보인다. 누구라도 내가 외부인인 것을 알아채고 내쫓을 것만 같다. 동네 어귀에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부서진 벽 위에 앉아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동네 곳곳에는 종로경찰서에서 관리하는 집이라며 숫자가 매겨져 있다. 빈집임을 알리는 표시인 것이다. 지붕이 깨진 곳은 부지기수이고 얼마나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았던 건지, 넝쿨이 대문을 뒤덮고 자라고 있는 집도 있다.

조금 더 올라가자 연립주택이 즐비해있다. 개인 공간을 최대한 아끼고 그만큼 공유 공간을 활용하려는 듯 주민들이 내놓은 화분, 자전거, 가정집기 등으로 인해 어지럽다. 하지만 그게 또 사람 사는 풍경 같아 정겹다.

연립주택의 뒷문으로 나오면 선교사 조세핀 캠벨(Josephine Campbell, 1853~1920)이 살았던 선교사저택이 있다. 선교사를 뒤로 하고 보이는 작은 골목을 지나고 오르다보니, 저 멀리 청와대까지 바라보이는 뷰가 장관이다. 그 밑에 펼쳐진 깨진 기와지붕들의 연속이 묘한 대비를 이룬다.

반대편으로 내려오자 원래 천이 흘렀음직한 곳에 동네의 다른 집들보다 허름한 집들이 몇 채 있다. 거기 있으면 안 되나, 거기밖에 있을 수 없어서 지어진 집들일 게다. 그래서인지 훼손 정도도 더 심해서 지붕은 서까래가 다 드러나고 그 자리에서 이름 모를 식물들이 자라나고 있기도 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아름답다! 멋있다! 를 외치며 사진을 찍는다. 그러고는 문득 이게 요즘 읽고 있는 『서촌 홀릭』에서 로버트 파우저(Robert Fauser) 교수가 말하던 폐허 포르노(ruin porn)인가 생각한다. 폐허 포르노란 폐허를 찍는 사진의 장르를 부정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파우저 교수는 한국에 있는 동안 재개발로 곧 없어질 동네들을 안타까워하며 사진으로 기록한다. 하지만 그것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곳에 살고 있는 주민과 공감하게 하기는커녕 심미화하고 실제 일어나는 일의 심각성에 무감각하게 하는 폭력 행위가 될 수 있다며 스스로 조심하는 것이다. 그가 인용하고 있는 수전 손택(Susan Sontag)뿐 아니라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이 「생산자로서의 작가」에서 비참한 생활상까지 아름답게 담는 신즉물주의 사진을 비판하면서 떠오른 문제의식이다.

파우저 교수는 같은 책에서 한국의 무분별한 재개발을 비판한다. 그리고 재개발을 염원하는 주민들이 내건 “한옥 보존 반대” “재산권을 보장하라” “시장이 와서 살아라” 같은 구호를 의아하게 바라본다. 하지만 방문객의 입장에서는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남아있는 것이 좋을지 모르겠으나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입장은 조금 복잡할 수도 있다. 재개발이 되거나 될 예정인 지역에 비해 낮은 땅값 및 집값, 지어진지 오래되어 낙후된 집 시설, 차를 끌고 다니기 비좁고 걷기에 비탈진 길 등등. 내가 연립주택에서 정겹게 바라보았던 세간들은 숨기고 싶은 일상의 구질함일 수도 있다. 옛 모습을 보존하는 형태로 내부를 수리하고 단정하게 꾸민다고 해도 지금의 북촌처럼 강남의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주말에 잠깐 몰려와 구경하는 관광지가 되어 주민들은 또 다른 불편과 젠트리피케이션을 겪어야할지도 모른다.

가파른 골목길 위에서 본 청와대모습

하지만 언덕을 평평하게 깎아 매끈한 아파트를 지어 올리는 것만이 능사일까.

경찰차에 이어 벤츠차가 지나가더니 중년부부가 내려 한 건물을 올려다본다. 매입 가치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다. 그들은 현재 또는 가까운 미래에 여기 어딘가의 소유자가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여기 사람이라고 불릴 수는 없을 것이다.

여기 이곳에는 투자자들의 미래 수익보다 값진, 실제로 살고, 살다간 주민들의 추억과 기억이 켜켜이 쌓여있는 곳이다.

1920년대 도시형한옥
적산가옥

사직2구역에서 가장 유명한 역사유산은 앞서 언급한 캠벨이 살았던 선교사 저택이다. 조선시대 중심궁인 경복궁 양옆 북촌과 서촌에는 양반과 중인이 많이 모여 살았던 반면, 성벽에 맞닿은 사직동은 성 밖이나 다름없는 위치였기에 평범한 서민들이 모여 살았다고 한다. 고종이 아관파천으로 경복궁에서 덕수궁으로 거처를 옮긴 전후로 이 일대에는 외국 공사관들이 들어서고 선교사들이 교회와 학당을 지어 서민들과 더불어 살기 시작한다. 이런 근대의 역사를 보여주듯 이곳에는 북촌, 서촌, 익선동처럼 한옥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일본식 적산가옥, 양옥 등 다양한 양식의 건축이 공존한다.

이렇게 동네는 시간에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변화하고 쇠락하기도 한다. 그것을 다 밀어내고 깨끗하게 소독된 아파트를 세우는 대신, 그렇다고 더 나은 생활환경을 바라는 주민들의 바람을 무시하고 관광지로 박제해버리는 대신, 주민들이 편리하게 생활하고 그 역사와 문화를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방향으로 보존되기를 바란다.

_ 2017년 8월 19일, 8월 26일 나의 답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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