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계동 은행나무집

서계동 은행나무집과의 첫 만남은 전화를 통해서였다. ‘공간주共間主’를 이끌고 있는 정옥 언니가 서계동에 멋진 빈집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간 뒤 자신이 가진 번지 주소와 집 앞에 달린 새 도로명주소가 일치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나에게 전화를 건 것이었다. 그 집이 맞다는 것을 알자마자 언니가 내뱉은 말은 “집 앞 은행나무가 정말 크다!”였다. 그때부터 공간주의 첫 프로젝트 집은 서계동 은행나무집라고 불리게 되었다. 도로명주소 전에 동과 번지가 있었고―그날 인터넷을 검색하면서 알게 된 또 다른 사실은 서계동의 모양이 서계동 할 때 ‘시옷’자를 닮았다는 것이다―번지 전에 주민들이 부르는 이름이 있었던 것처럼.

서계동 은행나무집

아파트에 살면 나만의 지붕이 없다. 집을 부르는 말도 제품명과 숫자밖에 없다. 그렇지만 주택이나 작은 건물들은 파란 대문 집, 기와지붕 집, 붉은 벽돌 집, 살구나무 집 등 누군가의 집을 친근하게 부르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신기한 일은, 그 이름만 가지고도 누구나 쉽게 그 집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현진, 『진심의 공간』, 자음과 모음, 128쪽)

집 이름이라고 해봤자 건설사명과 평범한 아파트에 어울리지 않게 팰리스나 캐슬 같이 과하게 멋을 부린 단어가 합쳐진 것밖에 모르는 나로서는 낯선 개념이다. 사실 서계동 은행나무집은 찾기가 만만치 않다. 스마트폰이 생기면서 웬만한 곳은 실시간으로 지도를 보면서 찾아갈 수 있게 되었지만 좁고 고불고불할 뿐 아니라 가파른 경사에 바른 시멘트가 군데군데 부서진 길은 과연 여기가 맞나, 괜히 들어서기 겁나게 한다. 하지만 그렇게 언덕을 오르자 과연 듣던 대로 거대한 은행나무가 우뚝 서있다. 그때부터는 길을 잃을 수가 없다. 내 몸이 지나온 길의 감각을 기억하고, 은행나무가 내 마음 속에 특별한 의미로 다가와 남기 때문이다.

집의 내부는 더욱 특별하다. 회칠이 되어있는 겉모습으로는 상상도 못했는데 안은 목재로 이루어진 일본식 가옥이다. 집이 서있는 언덕 경사에 맞게 기울어진 천장이나 계단턱을 둔 구조가 특이하다. 조금 좁지만 쓰임에 맞게 세 개의 방과 부엌, 화장실로 잘게 나누어져있다. 식민지 시절 일본장군이 지은 것이라 짐작된다고 한다. 야무지게 쪼개어져있긴 하지만 장군이 살았다기엔 너무 협소해 보이는데 아마 은행나무가 서 있는 곳을 마당으로 하고 둘러싸고 있는 다른 집들이 예전에는 모두 한집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중 하나에는 현재 무속인이 살고 있어서 종종 은행나무에서 굿을 치르기도 한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장엄한 모습에 신령이 깃들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다시 밖으로 나오면 아담한 옥상이 있다. 거기서는 서울역 방면을 내려다볼 수 있다. 집의 반전미와 전망이 여기까지 올라온 수고를 잊게 한다. 이거야말로 성(캐슬)이나 궁전(팰리스)에서나 누릴 수 있는 호사 아닌가.

서계동 일대

사실 서울역과 맞닿아 있는 도심 중에서도 도심에 이런 풍경이 가능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서울역 때문이다. 동네가 철로와 차로 등으로 외부와 단절되어 발전이 늦어진 것이다. 그러나 최근 낙후된 고가도로가 차 대신 사람이 다니는 보행도로 ‘서울로 7017’로 거듭남에 따라 사람들이 이곳을 관심 있게 찾기 시작하고 있다. 고가도로가 잇는 남대문시장 등을 대상으로 한 봉제업을 주업으로 삼던 동네 경제는 변화가 불가피하게 되었고 부동산 투기가 과열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서울시는 서계동 일대를 재개발이 아니라 구릉과 옛길 원형을 보존하는 방향으로 도시재생하기로 결정했다. 결코 넓고 반듯한 길은 아니지만 은행나무집처럼 어디 한군데 마음을 주고 나면 편의를 위해 바꾸고 싶지 않은 정이 생긴다. 100년이 넘게 운영되고 있다는 ‘개미슈퍼’나 1927년 문을 열어 3대째 이어지고 있다는 ‘성우이용원’처럼 말이다.

개미슈퍼

서울역에서 갈 수 있는 곳은 서계동 일대뿐만이 아니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태극기 대신 일장기를 단 설움을 딛고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을 알 것이다. 하지만 그가 어떻게 그 먼 독일 베를린 땅에 갈 수 있었는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는 당시 발대 장소였던 일본에서 부산으로 배를 타고 건너와 바로 여기 서울역에서 경의선 기차를 타고 고향인 신의주를 거쳐 시베리아를 횡단해 갔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근처에는 손기정 체육공원과 손기정 기념관이 자리하고 있다. 손기정, 그리고 그와 함께 베를린 올림픽에 출전해 동메달을 딴 남승룡 선수를 기리는 기념사업을 진행하는 ‘손기정남승룡 프로젝트’ 사무실 또한 서계동에 있다. 지나가면서 본 사무실 건물 이름은 ‘감나무집’이었다. 이름 그대로 현관 앞에 큰 감나무가 눈에 띄었다. ‘공간주’와 같은 방식으로 이름을 지었다는 사실만으로 반갑다.

서계동 감나무집

서계동 국립극단

여름 끝자락에 본 그 감나무에는 지금쯤 감이 탐스럽게 익었을 것이다. 은행나무집 은행나무에서 열매가 떨어지기 시작하는 것처럼 말이다. 땅에 떨어진 열매의 고약한 냄새가 가시고 대신 노랗게 물들기 시작하는 잎이 다 떨어지기 전, 은행나무집에서 은행나무집을 닮은 어린 시절 집과 동네의 기억을 꺼내어보려고 한다. 지도를 보고 찾아와도 좋지만 스마트폰을 이용하지 않는 정옥 언니가 자신이 간 길 그대로 뒤이어 가는 나에게 일러준 대로 따라 와도 좋을 것이다. 서울역 뒷문으로 나와 길을 건너 큰길을 따라 걷다보면 단풍을 닮은 새빨간 국립극단이 나온다. 그 건물을 끼고 오른쪽으로 돌아 다음 갈림길에서 왼쪽, 위로 위로 가는 길을 택해 올라오면 된다. 어려운 것 같다고? 은행잎이 떨어져 길잡이를 해줄지도 모르겠다. 지나는 사람에게 은행나무집이 어디냐고 물어도 좋을 것이다. 어떻게든 찾아 다다른다면 더 이상 묻지 않아도 될 것이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아도 그 집이 은행나무집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챌 테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