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선동<이리오너라,캘리전> 이익희선생님


주민전시

공간의 주인은 함께라는 뜻을 가진 ‘공간주’ 대표 이정옥입니다.

종로구 익선동은 어쩌면 ‘공간주’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는, 저에게 가장 중요하면서 제가 아끼는 동네입니다. 2~3년 전 이곳에서 주민들과 함께 원예골목만들기 활동을 한 계기로 지금까지도 주민들과 잦은 만남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만나면 늘 “그때 한 여름이었는데, 우리 다들 고생 많았다” “이젠 힘들어서 못한다” 이렇게 시작과 끝말이 같죠. 안타까운 것은 함께한 주민들 중 일부가 이사를 가 만남이 여의치 않다는 것입니다. 다행히도 몇몇은 아직 남아 지금 전시를 시작하는 ‘익선동 주민소통방’이란 공간을 통해 지속적인 만남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익선동이 짧은 기간 동안 많이 변한 것은 누구나 다 알 것입니다. 이번 공간주 전시의 포커스는 공간, 주민, 그리고 이곳을 방문하는 시민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추억 만들기입니다.

익선동이란 공간을 통해 주민소통방지기 박소영 선생님을 만났고, 이야기 도중 익선동 일대 주민이신 이익희 선생님의 캘리그라피를 보고 전시를 기획하게 되었으며, 주민들과 함께 전을 부치는 오프닝을 그렸고, 거기에 이 지역에서 활동하시는 김뻐국 선생님 & 김순녀 선생님과 기타리스트 Juno 공연까지 더해 함께 판을 벌리고자 합니다.

이번 이익희 선생님 제2의 인생시작을 응원하며, 앞으로도 이곳 ‘익선동 주민소통방’이 이름 그대로 풍부하고 재미난 이야기들이 쌓이는 장소로 오래 남길 바랍니다.

익선동 이야기 >공간주 이야기 수집가 예주연

익선동은 같은 한옥이라도 북촌이나 서촌의 한옥과는 다른 느낌이다. 양반들이 모여 살았던 북촌과 달리 서민들을 위한 한옥 단지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1920년대 부동산 개발업자 건양사 대표 정세권은 우리나라 최초 도시형 한옥 단지를 익선동 166번지에서 시작했다. 주변 고층 건물들로 둘러싸여 보이지 않았던 ‘한옥섬’이 알려지면서 익선동은 북촌과 서촌 다음으로 한옥 마을로 지정이 되었으며 핫플레이스가 되어 사람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핫한 관광지로 각광받기 전에 여기 터전을 일군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들이 있다.

오진암을 예로 들 수 있다. 삼청각, 대원각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요정 중 하나로 불렸던 곳이다. 밀실 정치가 이뤄진 곳이며, 대표적으로 1972년에 남북 주요인사들이 만나 7·4 남북공동성명 내용을 논의했다고 한다. 그러나 2010년 호텔을 짓기 위해 오진암은 이름의 유래이기도 한 오동나무를 포함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건물을 이루었던 자재들은 부암동으로 옮겨져 ‘무계원’이란 이름의 전통문화공간으로 재탄생했다고 하지만 말이다. 오진암을 출입했던 기생과 악사 들 덕분에 익선동 일대에는 포목상, 국악기상 들이 많았는데 힙한 상점들에 밀려 점점 문을 닫고 있는 추세이다. 사람들이 잘 찾지 않기에 동성애자들이 모이는 곳이기도 했는데 치솟는 임대료와 눈살을 견디지 못해 전용 공간들이 빠져나가고 있기도 하다.

번잡한 골목, 저마다 한옥 요소를 이용하여 파격적인 장식을 한 가게들 사이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 눈길을 끄는 집 한 채가 있다. 익선동 166-32번지. 활짝 열린 대문이 지나가던 이들의 발길을 멈추고 좁지만 기다란 마당으로 안내한다. 그 마당을 따라 두 사람이 앉으면 가득 찰 법한 방들이 줄지어있다. 비경제적인가 하다가도 방을 하나 차지하고 쉬어가고 싶은 충동이 든다. 나 같은 방문객을 포함해 모두를 보듬어 한옥 체험을 가능케 하고 여러 활동을 펼치게 해주는 ‘익선동 주민소통방’이다. 여기서 작고 조용하나마 진정성 있고 오래 가는 문화를 함께 일구어나가고자 한다.

기획시작 > 익선동 소통방지기 박소영 선생님

전시 <필묵 이리오너라 캘리전> 는 내일은 살기 위해 밀어두었던 소중한 오늘을 찾은 축하 자리입니다. 또한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으로 재발견된 ‘나’를 자랑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상점들이 즐비한 한가운데 오직 만남을 위해 비워져 있는 공간 소통방이 있습니다. 소통방을 아끼고 동네를 사랑하는 이익희 선생님은 겨울이 지나 봄이 찾아올 무렵 입춘대길을 써 오셔서 대문에 직접 붙여주셨습니다. “와! 멋져요“ 글씨 칭찬에 선생님은 아껴두었던 글씨자랑을 신바람나게 하십니다. 덩달아 신이나 전시를 해보자 했습니다. 우리끼리 전시회를 기획하는 동안 소셜벤처 공간주가 소통방에 임시착륙을 합니다. 재미있겠다며 함께 하자고 합니다. 하하하! 일이 점점 커집니다. 더 신이 납니다. 우리는 벌써 전시회를 연 듯 준비하는 내내 기뻐했습니다. 소통의 장에서 공간주(함께共 섞일間 주인主)라는 이름처럼 우리는 모였고 함께 섞여 준비하고 이 공간을 채워 주인이 되었습니다.

만남은 켜켜히 쌓인 시간을 들춰 누군가는 숨어있던 재주를 알아봐주고 누군가는 날개를 달아주었습니다. 이렇듯 만남은 매우 신비스럽습니다. 만남을 통해 다양한 차이를 인정하고 이해하며 발견과 소통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니까요. 앞으로 이 새로운 이야기의 주인공이신 여러분과 함께 이번 축하의 자리를 함께 하고자 합니다.

작가노트 > 낙원동 캘리그라퍼 이익희 선생님

인사의 말씀

짙푸른 신록의 계절 6월입니다. 필자는 한학자인 친형의 영향으로 일찍 붓을 잡은 인연으로 전문챠트, 문필사로 종사하였고 현재까지 실용서예와 함께 살아왔습니다.

필자세대인 7080세대는 모든 글씨를 손으로 써서 시각 효과를 내야했습니다. 이러한 작업은 꽤 힘든 과정으로 마음가는대로 한글을 쓰며 휴식을 취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때 썼던 글씨들이 캘리그라피였지만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았습니다. 그 시절과 지금을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처럼 자연스럽게 캘리그라피와 접하게 되었고 실용서예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점이 아쉬워 만곡 김세희 선생님으로부터 사사를 받아 전통서예에 입문하였습니다. 어느 명필가는 서예를 천상의 도, 접신의 예술이라고 말했습니다. 필자도 서예는 극히 지난한 예술이라고 믿고 어딘지는 몰라도 심오한 그곳을 가보고 싶은 욕망을 감출 수 없습니다. 필묵의 캘리그라피는 특별한 매력과 아름다운 감성의 글씨로 얼마든지 서예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자강불식(自强不息)의 신념으로 정진하여 그 뜻을 이루고자 합니다.

우연히 익선동 한옥마을 소통방지기 박소영 선생의 배려로 인해 소박하지만 전시회를 가지게 되었고 소통방에서의 소중한 만남으로 소셜벤처 공간주 이정옥 선생의 도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아름다운 인연의 중심에 강미자 선생이 있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도움주신 분들에게 꼭 득필하여 보답하고자 하는 감사의 인사와 함께 전시회를 찾아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올리는 바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