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계동 공감공간

<7인 작가의 공간을 통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다>

서계동 은행나무집 포스터

_ 배지오

영원회귀 / 상처받고 응시하고 꿈꾼다.

정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이동하며 하나의 중심을 지향하지 않고 다양성을 추구하는 삶의 방식은 세계회 시대의 새로운 삶의 형태 일 것이다. 본인은 일상속에서 맞이하는 경험에서 출발하여 그로부터 발생된 감정의 부산물을 표현하는 작업을 진행 하고 있으며, 특히 '이동'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인생의 전반에 걸쳐 일어났던 것이며,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에 가장 많은 영향을 주었던 경험이기도 하다. 끊임 없는 이동을 통해 숙명을 느끼면서도 이 때문에 받는 낯섦과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불안감이 스스로를 한걸을 물러나 확인하게 했다. 본인은 이러한 경험으로 인해 느낀 이질감, 상처, 낯섦 그리고 일상의 소외감을 작품으로 표현한다.

배지오

배지오

_ 이윤서

수의 목적 / Super candle_Reflection on Animism

나는 나를 둘러싼 여러 환경 중에 유독 잠자리에 대해 보수적이다. 잠자리란 내가 가장 편한 상태로 있을 수 있으며 나를 통제하지 않아도 되는, 통제할 수 없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이것이 내가 잠자리에 보수적인 이유인 것 같다.

환경이 바뀌었다는 것은 우리에게 있어 정신적 공간이 변형 된 것이다. 생각보다 물질적인 변형은 그리 크게 오지 않았다. 아마 변한 환경에는 내가 속한 환경과 같은 물체들이 놓여있다. 오히려 우리가 쓰던 것 보다 훨씬 질 좋고 값비싼 것으로 놓여져 있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러 우리가 그 물체들을 꺼리게 생각 할 뿐. 우리가 낯설게 보고 선을 긋는 것이다. 우리가 낯선 환경에서 내가 속한 환경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이유는 간단한 것 같다. 낯선 공간에는 나의'과거'가 내재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윤서

_ 할머니: 김남월 , 손녀: 오승희

우주나무 / 홍천 숲 속 통나무집 / 대화하는 동물

손녀가 없는 오후 긴 시간 동안 할머니는 당신이 좋아하는 꽃을 하나하나 그려보기 시작하였다. 15년 전 할머니의 그림이 시작되었다. 그림의 소재는 할머디 당신의 경험했던 추억을 하나씩 꺼내어 스케치북에 채워 넣었다. 열정적으로 하루, 이틀 꼬박 그린 그림을 웃으시면서 손녀에게 재미있는 이야기와 함께 보여주신다.

꽃과 나무는 그녀의 일부이자 삶이다. 커다란 나무는 여든여덟 할머니의 삶을 볼 수 있다. 나무는 할머니의 삶을 포함한 우주이자 하나의 생명체이다. 그리고 순수함이다. 그녀가 전하고자 하는 큰 나무는 하나의 우주이고 그 안에 우리는 서로 관계를 맺으며 행복하게 살고 있는 현재의 우리 모습이다.

당신의 인생속에서 느끼는 사진첩을 꺼내어 스케치북에 옮긴다.

김남월,오승희

김남월,오승희

_ 이홍철

ALBINO(알비노)

알비노라는 현상과 알비노라는 이유로 인간으로부터 고통 받고 있는 동물 즉, 인간외의 또 다른 생명체 '껍데기 속 또 다른 나의 자아' 라는 것을 주제로 한국의 모노크롬, 단색화의 또 다른 자기의 언어라는 의미를 접목시켜 표현하였다.

'빈집' 또한 이러한 알비노 작품의 의미와 많이 닮아있다.

이제는 아무런 온기가 없는 빈집이라는 공간에서 느껴지는 차가움과 공허함 그리고 밀려오는 쓸쓸함은 마치 알비노가 가지는 외형적 아름다움과 상반된 내면의 슬픔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빈집 안의 앏비노를 감상하면서, 누군가는 머물렀을 따뜻하고 아늑한 '집'의 본래 의미를 떠올리며 작품 속 생명감에 한줄기 온기를 불어넣어 줄 수 있는 '공간' 이 되기를 바라본다.

_ 정혜경

Midnight Green / Light / Tunnel

나는 유년시절부터 어둠에 대한 공포심이나 두려움이 컸다. 늘 집에서 불을 끄고 잠들기 전까지의 시간이 힘들었다. 불이 꺼지는 순간 캄캄한 어둠속에서는 당장 눈앞이 잘 보이지 않아 공간을 가늠하기 힘들고 당혹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무엇인지 알 수 없음은 위험과 두려움으로부터 불안하게 만든다.

초등학교 시절 우연히 문방구에서 야광 별 스티커를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것을 내방의 벽과 천장에 붙인 후에 방안의 불을 껐을 때 야광 빛으로 편처진 새로운 공간의 신비함에 놀라왔다. 불 꺼진 캄캄한 어둠의 공간은 형광색 별빛으로 채워져 순식간에 두려움과 불안에서 벗어나 새로운 환영의 공간으로 몰입하게 만들었다. 캄캄한 방 안이 빛으로 인해 새로운 공간으로 바뀌는 환영의 간접적 경험은 어둠에 대한 두려움이나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외었고, 그 후로 빛은 내게 편안함과 안도감을 주는 존재가 되었다.

정혜경

정혜경 /Light

정혜경 /Tunnel

_ 예주연

서계동 6곳 잇다

지방에서 나고 자랐지만 스무 살 이후 오래 이어진 외국생활 동안 나는 한국인이었고, 한국은 곧 서울이었다. 하지만 처음으로 살게 된 서울은 나를 그 일부로 품어줄 생각이 없어보였다. 친숙하면서도 낯선(unheimlich)도시에서 나는 외국에서보다 더 이방인처럼 느끼고 방황했다.

가장 자주 다니던 서울역도 낯설기는 마찬가지였다. 지금이야 SRT가 다니는 수서역도 생기고, 사는 곳과 가까워 고속버스터미널을 애용하게 되었지만 예전의 나에게 서울로 가는 길은 서울역 단 하나였다. 하지만 서울역이 최종목적지인 경우는 없어서 광장으로 나가지도 않고 곧장 지하철역으로 내려가곤 했다. 볼일이 있는 광화문, 시청, 명동 등지를 찍으면서도 그곳들이 어느 방향인지 몰랐다. 마음먹으면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아주 나중의 일이다.

서울역 정문이 향한 동쪽 방면도 그러할진대 서쪽 방면은 말할 것도 없다. 서울로7017이 개통되고 서계동에 처음 가보았다. 아니, 처음 가보았다고 생각했는데 이쪽 끝은 그와 함께 걸었던 정동 뒷골목으로 이어졌고, 저쪽 끝에서는 근처 여대 카페에서 누군가와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항상 조각나 있던 기억들이 이어지는 순간, 나도 어느샌가 서울에 추억을 입히며 살아가는 서울 주민이 되었구나, 하는 깨달음이 왔다. 나와 같은 꿈을 가지고 서울에 올라와, 이 언덕에 올라와 누추한 일상을 견뎠을 이들도 지금쯤은 그렇게 서울에서의 삶을 일구었을까.

지금은 집을 옮겼지만 나는 떠돌기를 멈추지 않는다. 이쪽과 저쪽을 잇고 과거와 현재를 잇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 만들기 위해...

이렇게 우리는 서계동 은행나무집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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