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 파란대문집


김환기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성북동은 예부터 예술인촌으로 불리었다. 성(城)의 북(北)쪽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성 바로 밖에 위치해 집값이 저렴한 한편 사대문 안으로의 교통이 나쁘지 않고, 남산을 중심으로 모여 살았던 일본인들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근대에 많은 예술인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현재 성북동의 대표 관광지인 ‘심우장’만 해도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인 만해 한용운이 지어 살던 집이다. 조선총독부를 마주하지 않고자 보통 남향인 한옥과 다르게 북향으로 지어서 말이다.

‘길상사’는 서울 3대 요정 중 하나였던 대원각이 사찰로 변모한 곳으로 유명한데, 요정으로 운영하던 이 건물을 법정 스님에게 시주한 이가 백석의 연인이자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주인공 자야(본명 김영한)다. 이렇게 성북동을 한 바퀴 둘러본 사람들이 차 한 잔 마시며 쉬어가는 ‘수연산방’은 『문장강화』를 지은 이태준이 살던 곳으로, 지금은 후손이 전통찻집으로 운영하고 있다. 근처에는 비슷한 이름의 ‘수향산방’이 있었다.

김환기의 호 수화와 그의 부인의 이름 김향안에서 한 글자씩을 따온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 둘이 신혼집을 꾸린 곳이다. 그들 이전에는 김용준이라는 화가가 살았는데, 당시 이웃하던 이태준이 늙은 감나무가 있는 집이라는 뜻의 ‘노시산방’이란 이름을 붙여주기도 하였다고 한다.

김용준은 월북 뒤 한국에서는 잊혀졌다. 비슷하게 동백림 사건으로 한국에서 오랜 시간 잊힌 윤이상이 독일로 유학하기 직전까지 살았던 ‘집터’에는 작년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표지판이 세워졌다. 그 맞은편에는 조지훈의 집이 있었던 것을 기념해 ‘방우산장’이라는 설치물이 만들어졌다. 지하철역에서 나와 북악산을 향해 걷는 도중 누구나 들어가 쉬어갈 수 있는 시인의 집이 조성된 것이다. 사라진 곳들이 아쉽긴 하지만 2000년대 초 재개발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으나 시민 모금으로 매입해 지킨 시민문화유산 1호도 성북동에 있다. 바로 ‘최순우 옛집’이다. 문화재 지킴이이자 미술사학자의 집답게 아름다운 한옥으로 그의 대표저서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처럼 기둥에 기대서서 앞에 펼쳐진 풍경을 한없이 감상하고 싶은 곳이다.

김용준의 <수향산방 전경>

이들 예술인들은 가까이 살면서 서로 교류하고 영감을 주고받았다. 그 흔적들이 몇몇 작품으로 남아있다. 앞서 말한 집터가 가까운 윤이상과 조지훈은 나란히 고려대 교가를 작곡·작사했으며, 김용준은 본인의 집을 후배인 김환기 부부에게 물려주고 부부의 신혼생활을 <수향산방 전경>에서 그렸다. 김광섭의 시 구절을 제목으로 한 김환기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연작도 있다. 김광섭 또한 성북동에 살았던 시인으로 자연을 파괴하는 도시화를 비판하는 「성북동 비둘기」로 유명하다. 말년에 병을 앓다 쓴 시로 「저녁에」가 있는데 뉴욕에서 소식을 들은 김환기가 아픈 친구를 그리며 그 시의 마지막 구절인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제목으로 연작을 발표한 것이다. 실제로 둘은 다시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푸른 점이 반복되는 거대한 캔버스를 마주하고 있으면 무한한 우주가 펼쳐지는 느낌이다. 자세히 보면 점 하나하나가 모양이 다르고 색의 농도나 채도가 다르다. 그처럼 각기 고유한 이들이 만나 영향을 주고받고, 그럼에도 아니 그래서 다시 고유해지며 함께 무한한 우주를 이루는 인연이 신비롭다.

For a long time the neighborhood of Seongbuk-dong has been known as an artist village. As the name―Seong[Fortress] and Buk[North]―indicates, it is located just north of the Seoul Old City Wall. Being outside of the city wall made it relatively cheap to live in but also still conveniently close to the city center.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many artists flocked here to avoid the Japanese who lived in the Namsan area.

Here are some of those artists and the houses they used to live in.

Simujang, the most popular tourist site in Seongbuk-dong, was originally built by Han Yong-un, an activist and monk-poet. Unlike traditionally favored southern exposure, it was constructed facing north. This was in accordance with Han’s wishes not to see the Japanese Governor-General's house in the south.

Another popular tourist site, Gilsangsa was restaurant and has now been turned into a Buddhist temple used to be a restaurant. is a restaurant turned Buddhist temple. Jaya(born as Yeonghan Kim) donated the property. She was the lover and muse of Baek Seok's famous poem "Natasha, the White Donkey, and Me."

After making a trip to these sites, take a break by sipping a cup of tea at Suyeonsanbang. Having been the former residence of writer Tae Jun Yi, it is now run as a cafe by his family.

There used to be another house with a similar name, Suhyangsanbang. ‘Su’ from the pen name of Whanki Kim and ‘Hyang’ from Hyang-an Kim, it is where the two spent their early marital life. Before them the painter Yongjun Kim lived there. Back then it was called Nosisanbang, Old Persimmon Tree House, the name Tae Jun Yi gave it.

The painter Yongjun Kim had been forgotten in South Korea after he defected to North Korea. Isang Yun, who had also been erased in South Korea’s histery after he was falsely accused as a spy of North Korea during the East Berlin Incident, used to live in this neighborhood before he went to Germany to study. The building is no longer in existence, but last year, on the 100th anniversary of Isang Yun's birth, a memorial stone was erected on the site. In front of it is Bangusanjang, an installation made in memorial of the poet Cho Chi-hun, whose house as well no longer exists.

But there are those houses that have stood the test of time. One such house is the Choisunu House, a Hanok the former head of the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built and lived in until his death. Against developers' plans, citizens formed The National Trust Campaign and protected the house. The building and its small garden are just as beautiful as those old Hanoks Sunu Choi visited and praised in his beloved books.

These artists lived close to and inspired each other. Isang Yun and Cho Chi-hun wrote the Korean University anthem together, each in charge of composition and lyrics. Yongjun Kim turned his house over to the Whanki Kim couple and painted their happy marital life at that house.

One of Whanki Kim's most famous paintings is "Where, in What Shape, Shall We Meet Again?" and the phrase is originally from a poem of Kwangseob Kim, another resident of Seongbuk-dong. A big canvas made of endless blue dots is like the infinite universe. At close look, you can find each dot's difference in color and concentration. Unique beings meet, affect each other, and become unique again in spite of - and - by meeting each other. But at a distance, you can then see that it is those dots and beings that the universe is comprised of.

성북동 공간주 <파란대문집 168-250>

‘공간주’의 사무실을 구하기 위해 수개월을 헤매다 성북동의 가파른 언덕 위 2층 주택 ‘파란대문집’을 만났다. 10년 넘게 비어있던 집을 청소하고 벽과 창을 트고 겹겹이 발라진 벽지를 뜯어내 페인트칠을 하고 전기를 달고 설비를 새로 하는 등 대대적인 공사를 하면서도 대문 색깔만큼은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우리가 몰랐던, 서서히 알아갈 이 집의 역사와 동네와의 조화를 존중해주고 싶기 때문이었다.

We found 'Blue Door House' after many months of searching for just the right place. It is a two-story building on a steep hill, and we immediately knew this would be our spot. Since then we have almost entirely renovated the house, breaking down walls, widening the window, removing wallpaper and tile, and renewing the water lines. But we wanted to keep the original door color, as it was a wonderful blue that seemed to fit in charmingly. We wanted to respect the history and the harmony this house had made with all the other houses in the neighborhood.

공사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이 집을 거쳐 간 사람들은 헌 벽지를 깨끗이 뜯어내고 새로 도배할 여유가 없었는지 20여 년 전 날짜를 한 누렇게 바랜 신문지 위로, 장볼 목록과 지인들의 연락처가 메모되어 있는 꽃무늬 벽지 위로, 덕지덕지 벽지를 발라놓았다. 그 벽지들을 뜯어내자 2층 외벽에 화장실에나 어울릴 만한, 사람 얼굴이 들어갈까 말까 한 작은 정사각형 모양의 창이 여덟 개나 숨어 있다가 나와 우리를 놀래킨 적이 있다. 아마 나중에 들어온 사람이 산기슭의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막아버렸겠지만 처음 집을 지은 사람의 바깥을 향한 아기자기한 소망이 엿보였다.

During the renovation phase we uncovered several layers of wallpaper. Among them were old newspapers dated back over twenty years and one with contact numbers and a grocery list scribbled on it. Behind the wallpaper on the second floor were hidden eight square windows, each the size of a human face. Perhaps one of the owners blocked them to protect the house from the cold, but we could see the original builder's wish to be connected with people outside and are glad to have uncovered them, bringing the house back to its original charm.

같은 방향의 테라스로 나가면 사람들이 저마다 보금자리를 튼 모습과 저 멀리 성곽과 남산이 어우러진 풍경이 장관이다. 성북동은 대사관저와 유명기업들의 회장집 등 부촌과 서민 동네가 자연스럽게 섞여있다. 가파르고 좁은 길 중간에 있는 ‘파란대문집’은 서민 동네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낯선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자 경계하던 동네 주민들은 이사 올 거라는 우리의 말에 젊은 사람들이 왜 여기까지 올라왔냐고, 안쓰러워하다가도 곧 맑은 공기와 경치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공사를 하는 내내 뭐가 부족하거나 힘들지는 않은지 음료나 음식을 한껏 싸들고 와 손을 보태주었다. 오랫동안 비어있던 빈집에 온기를 불어넣겠다는 뜻으로 시작한 ‘공간주’이지만 항상 이렇게 먼저 따듯한 손을 내밀어주는 이는 주민들이었다.

Seongbuk-dong is a neighborhood with both rich and poor areas. There are embassy residences along with small poorer houses narrowly standing on the hills. 'Blue Door House' is not a luxurious house. Our neighbors expressed their concerns, how young women like us would live in such a tough environment. But slowly they opened their hearts and said we would not be willing to leave the fresh air and good view the neighborhood has to offer once we got used to it here. They didn't hesitate to offer a hand or meals during the renovation. SPACEHOST's mission is to give warmth to long-deserted places, but it was always people living as neighbors nearby who stretched their hand to help first.

공간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잠재력 있는 공간을 발굴해 주민과 청년들과 나누는 것이 목적이었기에 ‘공간주’는 팝업갤러리 형식으로 옮겨 다녔다. 하지만 한 지역을 깊게 알고 그를 바탕으로 다각도의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거점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파란대문집’에 들어서자마자 2층 주택 네 개 방들의 앞으로의 모습이 그려졌다. 2층에는 공유 사무 공간과 방 하나를 하루종일 빌려 작업을 하고 숙박할 수 있는 게스트룸이, 1층에는 서재와 주민들과 관심있는 이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공유 거실이 잘 어울릴 것 같았다. 공유 거실을 만들기 위해 부엌과 안쪽 방 사이 벽을 텄고 방문을 떼어냈다.

SPACEHOST had been on the move because we hadn't intended to own a place but to discover locations with rich context and share the values of it with others. But we decided, as we grow, to have a base so that we can know an area deeper and tackle the problems the city has from more diverse and in-depth perspectives.

There are four rooms at 'Blue Door House' and we can already picture what each room will look like. On the first floor is the study and a shared living room, where people in the neighborhood can use freely. On the second floor there will be a shared office space and a guest room, where people can rent and work at a desk by the window overlooking a wonderful view into the city.

그 문으로 대신 늘 가지고 싶었던 기다란 나무식탁을 만들기로 했다. 문의 원래 기능이 그렇듯 누구에게나 열려있고, 하지만 거기에 식탁의 기능을 더해 함께 모이는 공간이 되는 것이다. ‘공간주’는 성북동 ‘파란대문집’을 거점으로 하여 여기서 만난 사람들과 함께 주변을 서서히 물들여 가고자 한다. 청년들이 주민들과 자연스레 어울리고, 함께 공간의 가치와 집 또는 동네의 본질을 찾는 곳으로 말이다. 언젠가 그 모습을 멀리서 보면, 대문들이 모인 모습이 김환기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 점묘화 같지 않을까. 그리고 그 옛날 예술인들의 집 이름과 그들이 맺었던 교류가 기억되는 것처럼 ‘공간주’의 ‘파란대문집’과 그 속에서 맺은 느슨한 연대들도 이어져서 기억되지 않을까.

We took down some walls and got rid of some doors. We refurbished the doors turning them into a long wooden table, which we hope will last for a long time. It now functions as both a door that is open to everyone and a kitchen table that gathers everyone through its use. SPACEHOST hopes 'Blue Door House' achieves those two goals as well, to be open and to gather.

Doing so we would like to bring together young creative people, allow them to mingle with local residents, and revive a wonderful old neighborhood. We also hope to see the expansion of this network. If looked at from a distance, the collection of the doors of people that share our philosophy would look like dots on the painting of "Where, in What Shape Shall We Meet Again." And just like the names of the artists' houses have been remembered, we wish the 'Blue Door House' and the network that we build will be remembered in the future as part of the history of Seongbuk-dong.

共間主 JOOYEON, YE

공간주 성북동 파란대문집 <이 집에 머물고 싶다> 오픈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