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래동 도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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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래동의 지명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문익점이 목화를 전래하였다는 뜻에서 문래라고 했다는 설과, 물레라는 방적기계의 발음이 문래로 굳어졌다는 설이 그것이다. 둘 중 무엇이 맞든 방직과 오래 연관을 맺은 건 확실해 보인다. 문래동은 한강의 폭이 넓어짐에 따라 유속이 느려져 생성된 갯벌인 영등포(뻗은 갯벌이라는 뜻의 ‘버등개’를 한자로 뜻을 빌려 쓴 것이라고 한다)에 속해 있다. 이처럼 공업용수가 풍부하고 넓은 벌에 노동 인력이 풍부했기 때문에 일제가 군수 방직공장을 지어 개발했다.

1970년대 문래동 오백채 마을 (출처:핀터레스트)

노동자를 위한 집합 주택이 세워지기도 했는데, 당시에는 어마어마한 숫자였을 500채가량이 한꺼번에 지어져 어르신들은 여전히 이 지역을 ‘오백채’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한다. 그러나 채 입주를 하기도 전에 전쟁이 나버리고 지금은 대부분 공장으로 용도변경이 되었다. 근처에 구로공단이 생기면서 철공소가 들어섰다.

1958년 대선제분 공장

1958년 대선제분 공장 (출처:서울시)

2000년대부터 예술가들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2010년 서울문화재단이 문래예술공장을 지으면서 문래창작예술촌을 조성했다. 큰 공장들은 더 이상 운영을 하고 있지 않은데, 그중 경성방직 공장은 타임스퀘어가 되었고 사무동은 카페리브레x오월의종이 빌려 쓰고 있다. 대선제분 공장은 민간주도형 도시재생 제1호로 태어날 준비 중이다.

1970년대 경성방직 공장 (출처:핀터레스트)

이렇게 겹겹의 역사가 쌓인 곳에 공간주가 제2호 거점공간 ‘도시간’의 둥지를 틀었다. 제1호 공간 ‘파란대문집’이 있는 성북동이 누에고치에서 비단이 되는 실을 뽑아내는 선잠으로 유명하다면 문래동은 목화에서 면을 만드는 방직으로 유명하다고 할 수 있다. 우연의 일치라기엔 두 곳 모두 실을 잣듯이 공간 곳곳에 숨어있는 이야기들을 뽑아내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다가올 미래를 잇는 공간주가 활동하기에 적합하다는 생각이 든다.

도시의 시간 그리고 사람

시간을 잇는 가장 대표적인 물건은 책일 테다. 금방 소모되어 사라지는 소비품들과 달리 책은 기록의 기능을 할 뿐 아니라 다각도의 심도 깊은 사유를 불러일으킨다. 따라서 도시의 유휴공간을 청년들에게 제공하는 일을 해왔던 공간주는 여기서 더 나아가 청년들이 도시 문제를 스스로 연구하고 해결할 수 있게 책을 매개로 만나고 토론하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책으로 시간을 잇는 ‘도시간(圖時間)’이다.

세상 하나뿐인 도시간 간판

문래동을 걷다 보면 아직도 성업 중인 철공소들 사이로 깊은 실내가 들여다보이는 공간이 하나 있다. 철물이 쌓여있는 대신 나무 책상이 길게 나 있어 눈에 띈다. 집주인이 40년 동안 슈퍼를 운영한 곳으로, 공간주가 들어오기 전 1년 간은 예술가의 작업실로 사용되기도 했던 곳이다.

공간주가 들어오고 난 뒤에 벽을 새로 바르고, 울퉁불퉁했던 바닥의 수평을 맞추는 등 대공사를 거치면서도 하나 남겨둔 것이 있다. 바로 시계다. 수십 년 한 장소에서 터줏대감처럼 자리 잡고 있는 이 작은 시계가 공간 전체 컨셉을 좌지우지했다.

문래동 도시간 6:30

생소한 이름의 Jeco를 검색해보니 지금처럼 모두가 휴대폰을 가지고 다니지 않던 시절, 관광버스 등에 달려있어 시간을 알려주었던 시계라고 한다. 그리고 앞으로 '도시간'에 남아 이 공간과 동네가 지나온 시간을 알려주며 보이지 않는 실로 현재와 미래를 잇는 역할을 해줄 것이다.

<관련 영상>

"문래동 방직공장"

"문래동 영단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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